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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어디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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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모노폴리 작성일16-12-09 14:10 조회2,7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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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고향이 어디십니까?
정  가18,000원
출판사모노폴리
지은이위진록
페이지482
발행일2013-10-18
ISBN 978-89-91952-18-8

 

나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만 17세에 해방을 맞이해 공산주의를 체험하고 60여 년을 해외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를 어느 늙은이의 넋두리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20세기의 격동기를 한 마리 늑대처럼 멀리에서 가까이에서 조국을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이다. 아직도 내 마음의 눈물 줄기에는 희망의 꽃망울이 살아 있다. - 머리말 중에서

KBS 원로 아나운서 위진록 선생의 자서전이 출간되었다. 현재 미국 LA에 거주하며 수필가, 방송인,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위진록 선생이 80여 년의 인생행로를 한 권의 책으로 담아냈다. 그간 수필집과 클래식 음악 에세이를 집필, 출간한 위진록 선생은 20세기 한국의 현대사와 맞물린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고백적 기록’이라는 부제 그대로, 위진록 선생은 자신의 삶을 과장되게 윤색하거나 미화하는 법 없이 사실 그대로 드러내면서 격동의 시대 한복판에서 겪어야 했던 삶의 희노애락을 되돌아보고 있다.
위진록 선생은 오로지 몇 자루의 연필에 의지해 200자 원고지 2300여 매에 달하는 자서전을 집필했다. 일제의 조선말살정책이 한창 진행되던 1928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10대 시절 대부분을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보내고 경성역(서울역)에서 역부로 근무하다가 8·15해방을 맞이하고 이어 만 19세의 나이로 서울중앙방송국(KBS)의 아나운서로 합격한 이후 위진록 선생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창기의 현장 일선에서 활약했다. 이승만 대통령 지방 순시 수행 기자, 김구 선생 장례식 실황중계, 6·25전쟁 남침 제1보 방송, 9·28 서울수복 제1보 방송 등 역사적인 순간에는 늘 위진록 선생의 목소리가 제일 먼저 울려 퍼졌다.
또한 라벨의 ‘볼레로’ 초연 중계, 라디오 성우, 영화 내레이터, 라디오 드라마 집필 등 다양한 문화 방면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점령한 서울에 남아 여러 번의 절체절명 순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위진록 선생은 1950년 11월 한 달 예정으로 당시 도쿄에 자리한 UN총사령부방송의 아나운서로 일본으로 향했는데, 이것이 64년을 조국을 떠나 일본과 미국에서 타향살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자서전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일제강점기에 유년 시절과 10대 시절을 보낸 기록, 둘째, KBS 아나운서로 전방위에서 활약하다가 6·25전쟁을 맞이하여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시절의 기록, 셋째, 일본 도쿄와 오키나와에서 UN총사령부방송에 근무하며 다시 격동의 시기를 겪게 되는 1960년대 한국과의 인연, 넷째 1972년 청춘을 모두 바친 UN총사령부방송을 떠나 불혹이 넘은 나이에 미국 이민길에 올라 LA의 해변에 자리를 잡고 햄버거 장사를 하며 고군분투 살아온 삶의 기록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위진록 선생의 <고향이 어디십니까?>에는 자신의 뜻과는 달리 낯선 땅을 떠돌며 평생을 살아야 했던 이방인의 고독한 숨결이 진하게 배어 있다.


언론 소개

문화일보 2013-09-30

북한 인민군의 6·25 남침 1보와 국군의 9·28 서울 수복 소식을 맨 먼저 방송했던 재미교포 위진록(85) 전 서울중앙방송국(KBS 전신) 아나운서는 남북한과 일본, 미국 등지에서 부평초 삶을 산 현대사 산 증인이다. 65주년 국군의 날인 10일 1일에 맞춰 자서전 ‘고향이 어디십니까?’를 출간한다. 그는 자신의 아픈 경험을 토대로 군 발전을 위해 충정어린 고언(苦言)을 했다.

위 씨는 1950년 6월 24일 토요 숙직을 서면서 현대사의 거센 소용돌이에 빨려들어 간다. 다음날 새벽 5시 10분 스튜디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 권총을 찬 박모 대위가 전쟁 발발을 알리는 메모를 꺼내며 바로 읽을 것을 명령하지만, 그는 첫 방송이 오전 6시로 방송 규정에 따라 방송국장 대리 민재호 씨에게 연락하고, 당시 휴전선 충돌이 잦았던 때라 상부 확인 작업을 거쳐 오전 7시쯤 ‘북한군 전면 공격’ 임시뉴스를 내보낸다.

1955년 한 일간지 6·25 좌담회에 참석한 군 장성들은 전쟁 직전 국군의 경비 태세 문제는 없었다고 변명을 늘어놓은 대신 “방송을 늦게 해 국군의 발목을 잡지 않았다면 전세가 확 달라졌을 것”이라며 말단 아나운서 위 씨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전사(戰史)에는 1950년 6월 24일 저녁, 육군 장교클럽 낙성기념 파티에 참석한 육군참모총장 채병덕 소장 등 군 수뇌부는 명동 술집에서 2차 회식까지 하고 새벽 2시에 귀가하며, 새벽에 북한군 침공 보고를 받은 채 총장은 “또 그런 충돌이겠지”하며 몽롱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고 기록돼 있다. 새벽 5시40분에 정보국장 장도영 대령이 육군본부에 출근했는데 오전 6시가 되도록 육군본부에는 간부 장교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위 씨는 “전쟁 발발 1년 전부터 남침 소문이 파다했지만 군과 국민의 총체적 안보 불감증이 북의 오판을 불렀다”며 유비무환을 강조했다.

위 씨는 “2012년 북한 탈출병 ‘노크 사건’등 국군의 불명예스러운 일이 보도될 때마다 책임을 전가하던 그 옛날 장군들의 무책임한 전통이 살아 있지나 않을까 걱정된다”고 꼬집었다. 올해 국군의 날 행사는 10년 만에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하지만 제아무리 비싼 첨단 무기도 정신력이 해이해지면 무용지물이다.

북한군 침략을 막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 군 전체를 폄훼하자는 건 아니다. 남침 위기를 제때 감지하지 못하고 결정적 경계 실패 등 군기(軍紀) 해이를 남 탓으로 돌린 군수뇌부의 무책임함이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정충신/논설위원

저자 약력
1928년 황해도 재령에서 가난한 지방관리의 2남 9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개성, 평안북도 선천 등을 전전하며 초등학교를 졸업. 1940년 평양사범학교에 입학하고 1942년 3학년 중퇴.
남신의주역 역부, 서울(경성)의 한인회사, 일본광고 대리점 등의 사환을 거쳐 성역(서울역) 역부로 일하는 동안 1945년 해방을 맞이했다. 역부를 하면서 누님의 술집 영업을 돕고 독학으로 한글을 습득, 1946년 겨울 신춘문예에 응모했으나 낙방.
이듬해 1947년 KBS 제1회 ‘방송극 연구생’모집에 합격. 장민호, 민구, 조남사 등과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 연속 아동극 ‘똘똘이의 모험’의 아저씨 역으로 발탁되어 ‘똘똘이(구민)’와 함께 우리나라 아동극의 한 장을 펼쳤다. 같은 해 9월 KBS 아나운서 모집에 합격, 만 19세로 한 나라 국영방송의 최연소 아나운서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두 번 모두 학력 허위기재로 응모자격을 얻었으며 그것이 일생동안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다.
1948년 KBS 제1회 방송극 대본 공모에 입선, 김구 선생 장례식 중계 등 격동기의 방송 일선에서 활약. 1950년 북한 공산군 남침의 제1보를 방송한 아나운서로 기록에 남아 있으며, 그해 11월, 한 달 예정으로 일본 도쿄의 UN군 총사령부방송(VUNC)에 파견되었으나
22년을 도쿄와 오키나와에서 근무하다가 미국으로 이민했다.
남가주 바닷가에서 햄버거 장사 10년, 서점 등을 경영하는 한편 동네신문을 발행했다. 재미 방송인협회 고문, 가주예술인 연합회 회장을 지냈다.
저서로 수필집『하이! 미스터 위』(1979), 『이민 10년 생』(1984), 『잃어버린 노래』(1993), 『낙타의 속눈썹』(1997), 『위진록의 커먼센스』(1999), 평전『5분 인물전』(2004), 『클래식, 내 마음의 발전소』(2011)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제1장 2남 9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다
‘베드로’라불린아이
토지측량사 아버지
팔려간 누님들
아버지의 죽음
태어난 집을 떠나다
누님의 남자
개성으로

제2장 서본정西本町에서의 생활
선천으로 이사하다
외로운 아이
선천에서 보낸 첫 겨울
선천에서 만난 친척 
사슴 사냥
돈이 없어도 갈 수 있는 학교

제3장 평양사범학교에 입학하다
인생을 지탱해준 다섯 가지 교훈
김승류 선배
삶은 오리알 열 개
슬픔을 가진 사람의 눈물은
슬픔과 반항, 그리고 퇴학

제4장 남신의주역의 역부
70년전의1인시위
돈암동 산 39번지‘김복경’
글씨 잘 쓰는 경성역 역부
사요오나라, 사요오나라……

제5장 형님과의 이별
뒤늦은 한글 공부
짧았던 풋사랑
행화촌 생활과 신춘문예 낙방
방송극 연구생에 합격하다

제6장 19세청년, KBS 서울중앙방송국아나운서가 되다
운명적인 첫 만남
쇼팽의‘장송행진곡’과 조병옥과 하지 중장
여동생 시집보내던 날
금지된 사랑
불길한 징조
김구 선생의 장례식 중계
계룡산 사자암에서 보낸 한 달
불안한 계절

제7장 6.25! 임시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산군에 점령된 방송국
처음 불러본‘매부님’
위기일발, 큰누님이 구하다
다시 절체절명에서 벗어나고
9.28 ! 여기는 서울 중앙방송국입니다!

제8장 한 달이면 일이 끝날 겁니다
도쿄UN군 총사령부 방송
요시노 마리꼬
위사마 !
요루노 플랫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전쟁 중에 올린 결혼식
만신창이로 현해탄을 건넌 창숙
창숙과 재회하다
사카키바라 사치오와 마사꼬
잡지 표지와 광고 포스터 모델이 된 창숙
도피생활의 끝

제9장 오키나와에 울려 퍼진 교향곡
직접 제작 방송한‘음악의 향연’
오키나와에서 맞이한 격동의 60년대 초
뽀찌의 추억
다시 만난 평양사범 동창생들
아, 옥창호
박정희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
이민에 대한 희망과 불안
채명신 장군과 하마다 쇼오지
어느 젊은 피아니스트 이야기
생큐, 대디
비운의 삶을 산 황진남 선생
골동품 가게에서 만난 여인
비행기 안에서 구겨 버린 담뱃갑

제10장 허모사 비치의 햄버거 가게
‘WEE’S KITCHEN’
생큐 베리마치! 생큐 베리마치!
대디, 아이 앰 쏘리……
브라질에서 온 여자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의 집
하이! 미스터 위
봉두완, 새마음운동, 그리고 10.26

제11장 아세아 서점
독서빈리락讀書貧裏樂
나, 당신밖에 몰라
서점에서 만난 사람들
모노드라마‘고향이 어데십네까’
동네신문『코리언 뉴스』
큰아들과 딸
구두 한 켤레를 들고 온 사나이
유럽여행 임시가이드
부르는 소리
베드로와 사이드카
막내아들의 결혼

제12장 아내와 천 마리의 종이학
북한에서 날아온 편지
평양 방문
다시 찾은 평양사범학교
형수님과의 재회
천추의 한, 단장의 아픔
부활절 대축일에 떠난 아내
여보! 나 돌아왔어요
틀니를 만들어주고 떠난 여의사
아내의 핸드백과 브람스
잃어버린 노래
뜻밖의 만남
아내의 얼굴

제13장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템페스트’
소년, 소녀를 만나다
베를린에서 만난 미망인 이수자
심청이와 심봉사
어느 날 찾아온 친구의 아들
김규환 선배의‘조국’
클래식, 내 마음의 발전소
홀로 떠난 일본 가톨릭 유적 답사
이 책의시작
편집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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